[논평] 성별이분법 유지 주민등록번호 개편안 규탄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전면 임의화하라!

[논평] 성별이분법 유지 주민등록번호 개편안 규탄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전면 임의화하라!

 

지난 17일 행정안전부는 45년만에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를 바꾼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를 새로 부여하거나 변경하는 경우 출신지역을 나타내는 뒤 6자리는 임의번호가 부여된다.

주민등록번호에 생년월일, 성별, 출신지역 등 개인에 대한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담기고 이것이 모든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연결자로 작동함에 따라 생기는 문제점은 이미 수차례 지적된 사항이다. 또한 주민등록번호에 담긴 지역정보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민등록번호를 임의번호로 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행정안전부의 개편안은 생년월일과 성별을 표시하는 앞의 7자리는 그대로 유지하는 반쪽짜리 임의번호화라는 것이다. 개인의 출생 시 정보를 그대로 남겨두는 이런 방식이 정보인권을 보장하는데 있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주민등록번호 중 성별표시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부분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90명 중 66.7%가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의 결과 응답자 중38명이 ‘전화, 인터넷 등의 가입, 변경(40%)’ ‘보험가입 및 상담(38.3%)’ ‘선거 투표 참여(36.7%)’ ‘은행방문 및 상담(35.0%)’ 등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단지 숫자 하나로 일상적 업무는 물론 정치적 참여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또한 1과 2 또는 3과 4, 이렇게 두 가지로만 구분된 성별표시로 인해 남성 여성, 이분법이지 않은 성별정체성을 가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은 자신을 온전히 나나타내지 못하는 주민등록번호로 계속해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이러한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지금과 같은 반쪽짜리 개편안을 내서는 안 됐다.

행정안전부는 생년월일과 성별을 남겨두는 이유로 ‘공공기관이나 병원, 은행, 보험사 등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기관들이 치러야 하는 추가 변경비용이나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이 주민등록번호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어 이를 제한하기 위해 2014년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된 상황에서, 이를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완전 임의화가 어렵다는 행정안전부의 변명은 자기모순이다.

또한 성별정보는 개인식별에 필수적인 것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수집되어 왔고 이에 대해 국내외에서 점차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14년 대법원은 부동산 등기 증명서가 성별정보를 포함 주민등록번호 앞 7자리까지 공시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지적되자 6자리까지만 공시되도록 예규를 바꾼 사례가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 오사카부를 비롯해 수많은 지자체에서 공문서에 불필요하게 성별정보가 드러나는 것이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차별임을 인식하고 가급적 성별정보가 드러내지 않도록 관련 문서들을 개선하고 있다. 이처럼 불필요한 성별표시가 갖는 문제점이 점차 드러나서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이를 유지하는 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명백히 퇴행적이며 반인권적인 처사이다.

2017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한 개인이 어떤 성별에 속하는가는 그의 정체성에 각별한 의미를 가지며 이는 인격적 권리로서 보장된다”고 설시하며 제3의 성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자신이 어떤 성별로 살아가고 이를 공문서 등에 표시하 권리는 개인들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인권이다. 그럼에도 개인들의 성별정체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이분법적인 주민등록번호 상 성별표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행정안전부의 개편안에 대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강력히 규탄한다. 행정안전부는 즉각 현재 발표한 개편안을 철회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완전히 임의번호로 변경하는 제대로 된 개편안을 마련하라.

 

2019.12.18.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