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보도자료] 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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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보도자료

수 신 언론사 사회부, 정치부, 사진부 담당 및 시민사회단체
발 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담 당 창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제 목 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발 송 일 2022년 03월 31일(수) 총 15매
  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하며, 인권과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1.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총 40개 단체가 함께하는 상설연대체로 지난 10년 가까이 성소수자 차별반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1.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지난 3월 22일부터 퀴어, 트랜스젠더들이 어디에나 있음을 보여주기위해 사는 곳, 일하는 공간, 이동하는 길 등을사진을 찍고 일기를 TJ 일상을 드러내는 행동을 진행했습니다.

 

  1. 이에 이 행동에 참여한 여러 성소수자 단체들은 3월 31일 모아진 사진과 일기로 제작된 대형현수막을 선보이며 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진행했습니다.

 

  1. 아래에 기자회견문과 발언문 및 기자회견사진을 첨부하오니 귀 언론사의 많은 보도를 바랍니다.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어디에나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요구를 들어라

 

  • 개 요

– 일 시: 2021. 03. 31.(수) 12시

– 장 소: 세종문화회관 계단

– 공동주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성소수자부모모임,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트랜스해방전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 세 부 진 행
  1. 사 회

| 소성욱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1. 발 언

| 에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 키도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 류세아 (트랜스해방전선)

| 정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 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1. 기자회견문 낭독

 

 

 

첨부

  1. 발언문
  2. 기자회견문
    3. 기자회견 사진

 

[발언문1] 에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태원에 살고 있는 보광동 주민이자 아직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 설명이 필요한 박에디입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된다며 자리 깔아준다는 기획단의 말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대놓고 징징거리기 위해 앞에 나왔습니다.

 

저는 잘 못 살고 있습니다. 2개월간 5번의 부고, 3번의 조문. 2번의 발인. 갑자기 식장에 가게 될지 모르니 검은색 옷을 주로 입는다고 우스갯소리를 나눕니다. 요즘 저는 저에게 주어진 삶과 싸우고 있습니다. 왜 살아야 되지? 이런 취급받으며 살아야 할 의미가 있을까? 이유 모를 눈물과 함께 찾아오는 허무함과 싸우며 불면증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살아가는, 열심히 사는 성소수자로, 언젠간 정말 그 언젠가는 그냥 보통 사람처럼 대우받는 그 날을, 그 사회를 기대하며 수만번 외쳤던 말들을 되뇌어 봅니다.

“우리 그냥 그렇게 살지 말자, 힘들어도 우리가 선택한 삶을 살자”

“똥밭에 굴러도 사는 게 났다”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우리가 좀만 더 단단해지면 돼”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다”,

이 말들은 2개월 동안 제 곁에서 떠나간 3명의 동료이자, 동생들에게 했던 말들입니다.

 

 

명절 때 집에 안 가고 자신 주변에 있는 트랜스젠더 중에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며 놀러가도 되냐고 묻던 동생에게 “힘들어도 우리 삶을 선택하며 살자”란 말이 너무 무거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놓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정도로 절박하게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똥밭에 굴러도 사는 게 났다”라는 말이 어쩌면 그의 똥밭에는 베이고 찢기는 날카로운 것들이 가득했던 게 아니었을까?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동료에게 “언젠가 괜찮아 질 거다. 그때까지 단단해지면 되지 않을까?”라는 말이 이미 단단한 사람인데 부셔질 정도로 밀어붙인 건 아니었을까?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우린 사람이 아니었기에 잘사는 건 고사하고 “남들”조차 될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저는 잘 못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회가, 제도가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너무 못됐습니다.

‘못’ 살게 만드는 것을 넘어 ‘안’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것 떼내라, 저거 붙여라. 그러면 노력을 봐서 인정해 주겠다 하니

그래 너네가 원하는 대로 준비해가면 “여기까지다, 저기까지다,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왜 하필 여기에 오려하냐”

 

우리의 학교 입학은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의 애국심은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이기심이라 불리고

우리가 “우리”로 있기 위해 있지도 않은 증거를 찾아 설명하라 합니다.

 

어떻게 그들을 이해시킬까 어떤 말을 해줘야 될까 고민했던 시간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흑화하여 저는 그들이 말하는 이기적인 트랜스젠더 박에디가 되려합니다. 존재만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말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개소리다! 안전을 이유로 우리를 위협하지 말라” 크게 외치겠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자”라는 쓰레기 같은 말에 아주 단호하게 그것은 혐오고 차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상종도 겸상도 하지 않겠습니다.

 

요즘 저는 잘 못 살고 있습니다. ‘안’살 고 싶은 마음까지 안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여러분과 같은 시간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도 제발 살아줘 라는 말” 그 마음 참 따뜻하지만 지금의 저에겐 너무 가혹하게 들려옵니다. 커피쿠폰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단호함을 무장하여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을 향해 그것은 명백한 혐오이며 편협적인 쓰레기 같은 주장임을 함께 외쳐주시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디에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꽤 가까운 거리에서 이 마음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넋두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언문2] 키도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안녕하세요. 저는 튤립연대 활동가 키도입니다.

오늘은 봄이 다가오는 춘삼월의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에겐 요즘의 날씨와는 다르게 가슴 시린 일들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정말 소중한 이가 떠났습니다.

처음 하사님의 소식을 듣고는 한참 멍해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변희수 하사님과 함께 식사와 게임을 하던 때가 생각나니 더욱 전혀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밝게 웃으며 미래를 약속하고, 안부를 묻자 되려 우리를 걱정하던 그녀가 떠났다니요.

 

한동안 그리움에 잠을 설쳤고, 그녀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려 할 때마다 원치 않았던 혐오의 말들도 보았고, 친구에게 한탄을 하며 한참을 위로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슬픔에 잠긴 사람은 저 개인만이 아니었습니다. 큰 용기로 세상 밖에 나온 그녀이니만큼 많은 분들이 그녀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런 만큼 많은 분들이 모여 촛불로 국방부 앞을 밝혔고, 흰색, 분홍색, 하늘색 우산을 쓰고 서울광장에 모였습니다.

그 일련의 행사들을 보고 겪으며 우리는 슬픔 앞에 더 굳건해지고 단단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개인만의 슬픔이 아니며 함께 아파하고 기댈 어깨가 되어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 또한 최근 다시 깨달았습니다.

제가 친구와 위로를 주고 받은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품을 내어 안아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힘이 되어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광장에서 우산을 들고 모이고, 국방부 앞에서 촛불을 밝힌 것. 이 모든 것들이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이런 슬프고 가슴 아픈 일들만이 우리를 모이게 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모일수록 목소리가 커지고 힘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자리자리마다 지금을 살아가고 앞으로도 살아갈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발자취며 발판이길 바랍니다. 이젠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입니다. 이 봄을 만끽하며 우리가 모일 날이 가까웠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발언문3] 류세아 트랜스해방전선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노란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주십시오.’

전철을 자주 이용하는 분들께서는 익숙한 멘트죠.

혐오는 예고도 없이 찾아와 일상을 무너뜨리곤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미디어에서도 모자라 교과서에서도 정치인의 입, 정당의 입장, 정부부처에서마저도 트랜스젠더도 사람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잊은 듯한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옵니다.

사람이 다칠까봐, 문이 닫힌다고 미리 알려주는 엘리베이터 기계음만도 못한 나라에서 기어이 살아내고 있는 모든 분께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얼마나 힘든 2월을 또 3월을 보내셨나요.

선거철이 되고, 도저히 신뢰하기 힘든 후보들의 약속이 난무하는 틈바구니에서 또 얼마나 공허한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하나, 둘.. 다섯 여섯, 그리고 수없이 많이. 더 이상 볼 수 없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부르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재개발 재건축 공약이 구원의 약속인 양 떠드는 후보들의 귀에 피가 나도록 외치고 싶습니다.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트랜스젠더는 언제 일상을 다 무너뜨릴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이게 당신들이 선택받고 싶어서 애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람들의 현실이라고 말입니다.

 

틈만 나면 세상은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드는데 왜 우리끼리도 서로의 내일을 볼 수 없을까봐 안절부절 해야 할까요. 슬프다고 말하려는 순간에도 고민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몰라서. 어려워서. 지독하게 슬픈 와중에도 머리로 생각을 합니다. 끊임없이 사건이 터지고 누군가는 죽어나가고 이제 이걸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지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죄스러운지 도대체 미안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 애도와 분노가 제멋대로 엉켜서 숨 한 번 편하게 내쉴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똑바로 지켜보고 있는 한, 떠난 이들의 이름과 삶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한 세상은 뒷걸음질 칠 수 없습니다. 지우려 들수록 우리는 더 굵은 글씨로 우리의 존재를 쓰고 말하고 외칠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먼저 별이 된 소중한 동지들의 부재는, 우리의 삶을 통해 더없이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부재도 존재의 증명이 될 수 있다는 것, 함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커다란 의미가 됩니다.

 

트랜스젠더는 멈추지 않습니다. 점잖게 굴다가 죽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난리를 쳐 살아남을 것입니다. 나와 내 친구들의 오늘을 지키는 사람들, 어둡고 좁고 긴 복도를 지나 기어이 평등한 세상의 문을 여는 사람들. 그게 바로 저이고 여러분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상투적으로 말하면 힘이 안 나니까 이렇게 해볼까요.

크게 소리내어 또는 조용히 입모양으로라도 내뱉어봅시다.

나는 밥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나는 밥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여도 둘이고

둘만 모여도 모두가 됩니다.

 

끊임없이 모이고 손잡고 소리치고 안아주면서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는 동지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등한 오늘을 만들어갑시다.

 

우리가 있기에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힘을 얻는 분이 계시다면

똑같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 또한 당신이 있어서 힘을 얻습니다.

혼자라는 생각 말고

살고 싶다는 절박함 말고

부디, 오늘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할 만큼의 힘듦이 있기를.

 

국가와 정치는 혐오를 방관하지만 우리는 결코 혐오도 서로의 아픔도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가능성도 희망도 승리도 결국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봅시다.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트랜스젠더 한 명 한 명의 존재도 끝끝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당당하고 찬란하게.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니 우리 더 선명해집시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고, 사실 지금 세상은 누구보다 트랜스젠더를 필요로 하니까요.

 

고맙습니다.

 

 

[발언문4] 정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안녕하세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남성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몸이 싫었고 저를 언니, 딸, 여성 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게 싫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저는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큰딸,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 시국 때문에 취직이 많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 또한 많이 힘들어하며 새 직장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몇 개월 째 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려서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라도 오면 다행입니다. 서류에 있는 제 사진에 있는 모습과 서류상 성별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 그리고 나는 남자인데 하도 취직이 안 되니까 제 성별정체성을 버려서라도 자꾸 ㅇㅇ여성개발인력센터 같은 곳에 뜨는 공고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남자인데 여자인 척’ 여자를 뽑는 곳에 지원하자니 지난번 회사생활을 생각하면 저에게 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망설이게 됩니다.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자로서 받는 ‘정현씨는 남자친구 없어?’ 라는 질문.

여자라는 코르셋에 갇힌 ‘정현씨는 머리 안 길러?’, ‘정현씨는 치마 안 입어?’ 라는 질문.

최근 호르몬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목소리가 변한 후부터는 전화상에서부터 ‘본인 맞으세요? 서류 상엔 여자라고 되어있는데…’ 라는 말을 들으며 ‘그래 나는 이렇게 발버둥쳐도 이 사회에선 여자구나.’ 라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저와 같은 비시스젠더인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동지들과 함께 있을 때입니다. 여기에선 제 성별정체성을 숨길 필요가 없고, 그들도 절 아무렇지 않게 남자로 생각하고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진실한 얘기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에 행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 있던 동지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얘기를 여러 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들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역시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게 이렇게 벅차고 힘든 일이구나 라는 걸 느낍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고 그들과 같이 이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 중에 한 명일 뿐인데 말이죠.

우리는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모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곁에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인 사람들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말아주세요.

 

 

[발언문5] 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안녕하세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그리고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활동하는 한희입니다.

 

오늘 저는 여기 기자회견에 오기 전에 재판을 하나 진행하고 왔습니다. 언론같은 데서는 흔히들 저를 가리켜서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라고 부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한마디를 덧붙이고는 하죠. 첫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라고요. 현재 한국에 등록된 변호사의 숫자가 얼마일까요. 이번달 기준으로 약 3만 명입니다. 그리고 흔히 외국의 조사에서 트랜스젠더의 인구비율을 0.6%로 잡습니다. 3만명에 0.6%면 얼마일까요? 180명입니다. 물론 이러한 산술적 비율이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저는 제가 정말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도, 유일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도 절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제가 어째서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2017년 제가 언론을 통해 커밍아웃을 할 결심을 하고 주변의 다른 트랜스젠더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고 만류를 했습니다. 어떤 이는 제가 벼랑 끝으로 몰릴 거라고 걱정을 하기도 하더군요. 다행히 제가 오픈을 하고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특별히 대단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았던, 소위 운이 좋아서였죠.

 

조건들, 네, 트랜스젠더가,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커밍아웃을 하더라도 지지해줄 수 있는 주변인들이 있어야 하고,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혐오와 괴롭힘을 마주하지 않은 직장 환경도 필요합니다. 아플 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병원, 혐오와 차별없이 방문할 수 있는 가게 등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가 아닌 평등과 인권, 존엄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과 미디어에서, 정치인들이 무지와 편견, 혐오를 쏟아내는 그러한 사회가 아니어야 더 많은 트랜스젠더가,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녕 트랜스젠더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신들을 들어낼 수 있는 사회입니까.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있던 자신을 드러냈던 그럼에도 우리의 곁을 떠나야 했던 우리의 트랜스젠더 동료들 앞에 우리 사회는 정녕 뭐라고 답을 하겠습니까.

 

앞서 제가 재판을 갔다 왔다고 했었죠. 재판을 하고 법정에 서다보면 사실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점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저의 법리를, 서면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재판장도 상대측 변호사도 그런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법정에 서는 수 만 명의 제각기 다른 변호사들이 있듯이 저 역시 그 중에 하나일 뿐이며, 트랜스젠더는 저를 가리키는 여러 수식어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트랜스젠더라는 수식어로 인해 제가 다른 이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도 역시 느끼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법원에서 화장실을 갈 때도 둘로 나누어진 표지판 앞에서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 하니까요. 여와 남, 1과2, 3과4,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사회 구조가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 저 자신이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장벽과 그로 인한 답답함과 괴로움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 이 자리를 비롯해서 계속해서 저를 드러내보고자 합니다. 적어도 운 좋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조건에 처한 이로써, 저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계속 이야기하고 저 자신이,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계속 지적하고 바꾸어나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보려 합니다. 그렇게 하여 언젠가는 소수의 트랜스젠더들이, 성소수자들이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별표현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함께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어디에나 있다. 앞에 보이는 현수막처럼 성소수자는,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언젠가는 첫 오픈한 트랜스젠더 변호사, 군인, 대학생을 넘어 공무원, 직장인, 언론인, 정치인 등 어디에나 존재하는 다양한 당사자들이 더 많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더 이상 ‘첫’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조차 없이 우리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트랜스젠더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서로를 드러내고 축하와 지지를 함과 더불어 떠나간 이들을 추모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함께 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여기 있음을 기억합시다. 지금의 차별과 혐오가 잠시 우리들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어디에나 존재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지울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들로서 끈질기게 살아가고 싸워갑시다. 감사합니다.

 

 

 

[기자회견문]

 

3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오늘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이다. 자신답게 살아가는 모든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를 축하하고 이들이 마주하는 차별의 현실에 대해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가시화의 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날이다. 많은 이들이 슬픔과 애도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모두가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마주하고 있는 차별의 현실에 대해서 이 사회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 다는 것을 몸소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정치는 어떤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서울시장 재보궐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부터 성소수자를 드러내놓고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사퇴한 안철수 후보는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를 운운하며 ‘퀴어특구’를 주장했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성소수자 정책과제에 대한 질의에 대해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차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면서 성소수자의 권리요구와 정책에 대해서는 답을 회피하거나 얼버무리고 있다. 제도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보이지 않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손쉬운 선거 전략이다. 그렇지만 차별금지법 하나 없는 나라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수도 서울 시장으로 나온 것이 지금 우리 정치의 현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우리 퀴어들은, 트랜스젠더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성소수자들을 직장 동료로 이웃으로 대하는 것에 거부감과 불편한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성소수자들은 불편한 기운들을 감내하면서 조금씩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 동료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일상을 살고 있다. 다음 구절들은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당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고 있는 일상의 기록들이다. 오늘 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수많은 퀴어들이 자신들의 일상이야기를 온전히 드러내어 다음과 같이 보내주었다.

젠더퀴어인 저는 3일간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왔습니다. 몇번이나 의심어린 말투와 눈빛으로 딸인지 아들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지만, 끝내 운구까지 직접 하며 할아버지 잘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매번 해명할 필요 없는 일상을 기원합니다. “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집 앞에 목련이 활짝 폈네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아 꽃이 폈듯이 차별과 혐오가 지나가고 존엄과 평등이 실현되는 나날이 올거에요.”

 

난 오늘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밥도 먹었다. 낮술도 했다. 나를 포함한 소수자집단, 그리고 다른 소수자 집단의 일상의 영위가 너무 힘들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얼른이란 단어를 타이핑했지만, 좀 더 차분히, 오래, 끝까지 지치지 않고 가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지웠다.”

 

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이 그걸 모르더라도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자 나의 일부이다. 무심코 잊혀지기엔 오늘만큼은 나의 일부를 드러내고 지하철에 타고 서울시청에 갔다.”

 

나는 오늘 반려묘와 사냥놀이를 하고 프라이드 에코백을 들고 출근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인 나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시스젠더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 가운데 차별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

 

퀴어인 우리 소소 부부는 오늘, 만난지 3000(전일제) 데이트로 행주산성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하루치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입니다. 사람 많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무지개 리본을 손에 묶어 높이 치켜듭니다. 모든 사람의 일과 사랑과 존엄을 지키는 동료시민이고 싶습니다.”

 

양성애자인 나는 오늘, 대학원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동기들과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카페에서는 크림라떼를 마셨고, 내일도 비슷한 하루를 보낼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퀴어하게산다. 나대로, 다르게살아간다. 이해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나대로 나름대로 온전한 나로서 살아간다

 

 

 

 

 

성소수자인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을 구현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쓴다. 가족을 꾸리기도 하고, 일하면서 야근도 하고, 공부하고, 운동도 하고, 섹스도 하고, 먹고 마시며, 아프기도 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종교를 가지며 힘든 삶을 이겨내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구체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서 같으면서도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퀴어인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거나 드러내는 것을 막으려는 수많은 권력과 억압, 배제와 낙인에 대해서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으며, 저항하고, 권리를 요구하며, 평등과 인권을 외쳐왔다. 저항의 역사는 결국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동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몸소 체험했다. 또한 혐오와 차별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것을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제도의 문법은 정치세력으로, 권력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미 법과 제도는 존재하는 사람의 일상을 위로하기에 한계를 드러냈다. 평등과 인권의 언어가 사람의 삶을 위무 할 수 있다. 배제되지 않는 삶, 살아가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살고자 한다.

 

3월 31일 오늘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어디에나 존재하고 일상을 살아가고 미래를 기획하고 주변을 살피는 퀴어들은 차별과 억압에 끝까지 살아남아 싸울 것이고, 더욱 더 존재를 드러내어 행진하고, 외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퀴어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2021331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성소수자부모모임,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 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트랜스해방전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